세계적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뱅크시가 만든 선댄스의 화제작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 2010)'를 보았다. 현대 문명을 패러디하는 예술인 그래피티가 그 스스로 산업화되는 과정에 대한 논픽션으로, '부정의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빈티지 의류 판매상인 티에리는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을 캠코더에 담곤 한다. 그러던 티에리가 우연히 거리의 예술가들의 세계에 매혹된다. 거리의 예술가란 공공장소에 낙서를 남겨놓고 사라지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낙서들은 무의미한 것에서 정치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낙서가 불법이기 때문에 거리 예술가들은 주로 한밤에 아무도 모르게 활동하는데, 티에리는 열정적으로 이들을 쫓아다니며 작업을 필름에 담는다.
그러던 티에리가 숱한 실패 끝에 거리 예술가 계의 전설인 뱅크시를 만나고, 기록하고, 돕게 되면서 티에리의 작업은 꽃을 피우는 듯하다. 뱅크시는 팔레스타인 '통곡의 벽'에 풍선을 쫓는 소녀의 모습을 남기거나, 9/11 추모일을 앞두고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들의 모습을 디즈니랜드에 걸어놓고 사라지는, 거리 예술계의 로빈 후드이다. 함께 작업하는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누구도 그의 실제 정체나 행방을 알지 못한다. 뱅크시 일당은 작업이 끝나면 현장에서 사라져야 하고, 작품도 그 특성상 금방 지워져 버리기 때문에, 작업과 그에 대한 반응을 기록해 주는 티에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뱅크시의 작품들
출처: Banksy.co.uk / hypebeast.com
그러나 뱅크시가 티에리에게, 이제까지의 기록들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보라고 했을 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영화적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의미한 나열 - '집중력 결핍 환자가 900개의 채널을 랜덤으로 돌리고 있는' - 광경일 뿐이었던 것이다. 뱅크시는 티에리에게, 영화 말고 다른 작업을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얘기하는데, 티에리가 이것을 스스로의 작품 활동을 시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티에리는 '뱅크시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큰 쇼를 준비한다. 거대한 빈 빌딩을 빌려서 모든 방을 수천 개의 자작 '거리 예술'로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20명의 직업 미술가들을 고용해 기존의 거리 예술을 살짝만 변형해 반복하는 공장을 차리고, 수 개월에 걸쳐 밤낮없이 작업한다. 마지막에는 예전에 촬영 작업을 하는 동안 가까워졌던 - 뱅크시를 포함한 - 유명한 거리 예술가들에게 '추천사'까지 받아 홍보에 활용한다. 결국 LA weekly 1면에 기사가 실리고, 전시회는 첫날 4000명이 방문하는 기록적인 성황을 이루며 두달 반 동안의 연장 전시 동안 백만여 달러를 벌어들기에 이른다.
여기서 기존의 거리 예술가들은 혼란에 빠진다. 티에리가 하고 있는 것과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티에리가 하고 있는 일 - 거리 예술을 베낀 다음, 그것이 팔리기를 거부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비틀어' 천문학적인 값에 팔아 넘기는 - 은 또하나의 패러디, 그들과 같은 예술 활동인가?
뱅크시와 함께 일하는 작가는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티에리는 멍청이예요. 하지만... 이제는 뭐가 농담인지, 농담이 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나는 티에리가 하는 일과 다른 거리 예술가들이 하는 일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차이는 농담거리와 농담 사이의 차이이다.
티에리는 스스로 말한다. '현대 예술이란 단지 세뇌란 걸 알았어요. 그래서 제 별명도 세뇌 씨 (Mr. Brainwash) 라고 붙였죠.' 그의 목적은 처음부터, 성공한 전시를 개최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집을 저당잡히기까지 한다. 또 그는 전시 홍보를 위해 기자들을 부르고, 홍보 전문가들을 고용한다. 그는 자기 작품의 값을 중개상에게 직접 부르면서, '마음대로 불러도 값이 되니 노다지가 따로 없죠.'라고 서슴없이 말하기까지 한다. 이런 모습은 전시의 내용이 휘발성을 생명으로 하는 그래피티라는 점에서 특히 모순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티에리로 인해 우리가 현대 예술의 모순을 깨닫게 되었지 않은가? 휘발성을 모토로 내세우면서 슬그머니 상업화를 노리는 현대 예술의 부정직한 작태를 거부하고, 아예 노골적으로 상업성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현대 예술 자체에 대한 풍자를 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점에서 티에리는 메타-패러디스트, 혹은 한 차원 높은 예술가가 아닌가?
그러나 답은 '아니오' 이다. 결정적으로, 티에리는 스스로가 모순이라고 지적하지 않는다. '전시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어요.. 그리고 온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여요..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라고 만족해 할 뿐이다. 모순이 의도한 것이었다면, 티에리가 정말로 만족해 해야 할 반응은 '당황'이지 '행복'이 아니다.
그렇다면 영화를 본 뒤 우리가 얻은, 현대예술에 대한 깨달음은 도대체 누구 덕분이란 말인가? 그것은 바로 대상이 아닌 그 대상을 보는 눈, 영화의 소재인 티에리가 아닌 영화 감독 뱅크시이다. 그들의 차이는 바로 '농담거리'와 '농담가'의 차이이다. 패러디스트는, 따라서 예술가는, 뱅크시이지 티에리가 아니다.
농담거리 아닌 진짜 농담은, 뱅크시의 홈페이지에 있는 'Shop'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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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트에 있는 무엇이든 개인적 용도를 위해 마음대로 받아가십시오. 하지만, 당신의 작품이나
상품을 만든 다음 그것이 '공식적인' 혹은 진짜 뱅크시 작품이라고 알리는 것은
나쁘며 매우 잘못된 행동입니다.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으로 엽서, 머그 잔, 벽걸이 그림 등을 만들지도, 판매하지도 않습니다.
뱅크시는 그의 작품을 팔고 있는 그 어떤 상업적 갤러리들과도 직접적 관련이 없으며,
페이스북/트위터/마이스페이스 등에서 만날 수 없습니다.
불평과 제안:
해충방역과@구글메일.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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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대게미 짓고기쁨과환희로가득할때근 는날이스쳐갈때
2012/05/08 10:43 [ ADDR : EDIT/ DEL : REPLY ]